스카이림 번역보관소



도라나의 기억


카그레낙



Moon and Star



나는 낭만가도 시인도 아니다. 나는 학자다. 창조가다. 고위 제작가이자 우리 종족의 미래를 자아낼 임무를 맡은 최고 조성 설계사이다. 혹자는 내가 정서적인 유대와 약점을 넘어선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도라나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때는 늦은 밤이었다. 나는 자존심과 좌절감으로 고양된 상태에서 잠을 잊고 일하던 중이었다. 작업 자체는 별 것 아니었다. 동맹 중 하나를 위한 선물로써 달과 별 문양을 새기고 마법을 부여한 반지 제작이었다. 그런데 무언가의 이유 때문에 세부적인 것들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희미한 촛불에 의지해 아무리 뚫어져라 응시해도, 책상 위의 노트는 더 이상 명확해지지가 않았다.


방이 밝아짐과 동시에 철거덕거리는 발소리가 뒤따랐다. 돌아보자 랜턴을 든 병사 하나가 있었다.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작은 몸집으로 보아 평상시의 경비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둑한 곳에서 일하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군주님." 경비병이 말했다. 투구에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밝고 청명하게 울렸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 그대로, 랜턴을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아 방을 밝혔다. 나는 웅얼거림으로 감사를 표한 뒤 다시 작업으로 몸을 돌렸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그래야겠지. 이래 가지고서는 머리를 밝히려면 랜턴 열 개는 더 있어야겠어." 내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고개가 비스듬히 갸우뚱했다. "가서 랜턴을 좀더 준비해 올까요, 군주님?"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자네는..." 나는 그녀의 방향으로 몸을 틀어 좀더 자세히 보려다 멈칫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무언가를 감춘 것마냥 양손을 등뒤로 하고 서 있는 그녀의 자세를 보니, 투구 뒤에 숨겨진 미소가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듯했다. 내 눈썹이 찌푸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점점 익숙해지게 될 감정이었다. "지금 사람을 놀리는 건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제가 놀린다고 거기 넘어가실 군주님도 아니신걸요."


나는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몇년간 아무도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자가 없었다. 나는 농짓거리를 던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을 수없이 맡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내가 물었다.


"도라나입니다, 군주시여." 살짝 예의를 갖추는 고개와 함께 답이 들려왔다.


"자네는 좀...전사치고는 꽤나 명랑하군, 도라나."


그녀는 웃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숙녀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벼운 피식거림이 아닌, 아무 거리낌 없이 진심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런 웃음은 전사들에게서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녀는 어깨에 손을 뻗어 전쟁망치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이 망치를 꺼내면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더라고요."


이것은 앞으로 동일한 방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이루어질 수많은 대화의 시작이었다. 촛불 빛이 희미해질 무렵이 되면, 도라나는 막 불을 켠 랜턴을 들고 재치있는 입담과 함께 나타났다. 처음에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때때로 내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이 경비병은 어떻게 감히 내 면전에서 그렇게 격식없이 처신하는 것일까? 나는 존경받아 마땅한 고위 제작가인데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녀를 저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철거덕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촛불이 희미해지는 순간 문을 밝히며 등장하는 기운찬 인사를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다. 대화는 점점 더 길어졌고, 내 기분은 점점 덜 시큰둥해졌으며, 심지어 이따금씩 얼굴에 미소도 띠게 되었다.


몇달 지나지 않아 나는 더이상 늦은 야근이 일에 대한 의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업 자체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그녀와의 대화였다. 그녀와의 유대감이었다. 그녀였다.


내가 다음 행동을 취하기까지는 몇달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나는 본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다. 꼼꼼하고 세심하다. 나는 오직 알맞은 때가 왔을 때만 행동한다. 그런고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이후 8개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녀의 투구를 벗어달라 요청했다.


"제 투구요?" 그녀가 반쯤은 놀리듯 반복했다. "너무 격식에 어긋나는 요청이신걸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겠죠, 군주님? 어지럽거나 열이 나지는 않으세요?"


"아니. 난 괜찮네. 지금보다 더 좋았던 때가 없었어." 나는 답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갑옷 너머에서도 그녀의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 도라나."


그녀는 머뭇거렸다. 도라나는 결코 머뭇거린 적이 없었다. "왜요, 군주님?"


"왜냐하면,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런 못생긴 투구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까."


"아," 그녀로서는 보기 드물게 말문이 막힌 증상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회복하고 말했다. "그럼 다른 예쁜 투구로 바꿔올게요."


나는 크게 웃었다. 몇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진심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에 내 몸을 맡겼다. 도라나의 웃음이 합류했고, 그 순간 내게 남아있던 일말의 긴장과 불확실함도 그 웃음에 날아가 버렸다.


"좋아요," 웃음이 가라앉자 그녀가 말했다.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군주님."


그녀가 투구를 벗은 순간,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해방되고, 밝은 하늘빛의 두 눈동자가 나를 향해 열렸다. 그녀의 얼굴은 흠이 없지 않았다. 이마는 둔기로 강타당한 희미한 상흔으로 손상되어 있었고, 코는 몇차례나 깨진 결과로 비뚤어져 있었다. 그녀는 숙녀답지 않은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며 멋적은 미소를 지었다.


"실망하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결코." 내가 답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도라나의 모습이다. 늦은 밤 내 작업실에서의 모습으로. 공식석상에서 보였던 개구쟁이 악동같은 모습으로. 나는 그녀를 웃음과 미소로 기억할 것이다. 떠나기 전 마지막 두 해 동안 침대에서 콜록이고 신음하며 괴로워하던 모습, 눈물로 얼룩진 두 눈과 창백한 피부의 모습으로는 아니다. 


내가 작업을 좀더 빨리 끝내기만 했더라면. 이 도구들이 좀더 빨리 준비되기만 했더라면. 황동 기계의 신과 그 심장, 그 모든 것은 전부 당신을 위해서였어, 도라나. 당신이 잠든 이곳에 함께 매장해버리고 싶었어. 당신의 미소를 되돌려주지 못하는데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아니, 나는 언젠가 당신에게 갈 그날을 위해 그것들을 아껴둘 거요. 당신의 빛 없이는 이 세상은 너무 어두워. 너무 어두워서 내가 살 수 없어.


아무도 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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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리엘 역사에서는 카그레낙이 로칸의 심장을 갖고 실험하다가 드웨머 종족을 멸망시켰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Moon and Star 모더는 그걸 낭만적으로 재해석해서 이런 이야기를 그려냈네요. 덤덤한 문체에 짙은 감성이 느껴지는 글이라 번역할 때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플레이타임이 짧아서 아쉽지만 정말 공들여 번역했고 애착이 가는 모드 중 하나예요. 네레바 라이징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음악 중 하나인데 카그레나 내부에서 흘러나올 때 참 감동적이었죠. 아직 플레이 안해보신 분이 계시다면 한번쯤 즐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제목은 '추억' 쪽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자가 그것을 과거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기억'이라고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