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경고:
이 책을 읽고 지니는 자는 언데드의 악몽을 끝내는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이 책을 횃불로 생각하라. 당신이 책을 읽으면, 횃불은 내게서 당신에게로 넘겨지는 것이다.
나는 손을 씻었다. 사악한 마술사들, 마법검들, 그밖에 초자연적인 것들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어리석은 이여, 행운을 빈다.
진심을 담아,
D. C.
[스포일러 주의]
루미루아의 유산
혹은
망자의 군주
(마음에 드는 제목으로 정해도 좋다)
나는 그해 여름 집을 떠났고
나는 그저 어린 소년이었네
그리고 비통함이 나의 유흥이 되었고
그리고 광기가 나의 즐거움을 앗아갔네
시가 마음에 드는가? 아버지와 함께 루미루아의 흔적을 쫓던 어느날 밤, 나는 야영지 모닥불 옆에 앉아 그 시를 썼다. 한때는 유명한 음유시인이 되겠노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실 거라는 꿈도 있었지.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신경쓸 사람은 내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제비디아의 일지와 이어지도록 '루미루아의 유산'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 자신으로서는 '망자의 군주'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제비디아 할프위치, 그 빌어먹을 병신새끼. 그냥 지 마누라가 원했던 대로 지 집 창고에 짱박혀 있었으면 아직도 자기 가족들 전부 살아있었을 텐데. 더 중요한 건 그랬다면 그 새끼가 그놈의 병신같은 일지를 적지도 않았을 거고, 우리 가족도 여전히 살아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내 말은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말이다. 어머니랑 형이야 아버지가 제비디아의 책을 발견하기 훨씬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아마도 그 일이 있었던 첫번째 밤 이후로 매일 밤 일어난 일에 대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기록을 남겼을 거라 생각한다.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매일매일 말이다. 사람이라면 무언가 유산을 남기고 싶어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제비디아의 일지가 아마도 수백이나 되는 다른 이야기들과 별반 다를 점도 없다. 다만 제비디아는 우리 아버지가 발견했던 사람이고, 또 그가 그 괴물들이 온 유래에 대한 약간의 진실을 우연히 발견해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세바스티안 케인이라는 성함을 가진 좋은 분이셨다. 제비디아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농부셨다. 그리고 제비디아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으셨다. 아마 아버지는 그에게 어떤 유대감같은 걸 느끼셨을 것이다. 공감이나 동정심같은 것이었을까. 어쩌면 제비디아가 실패한 것을 성공할 필요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간에 제비디아의 책은 아버지를 하나의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해야겠다. 제비디아가 그랬듯이 죽은 자들이 일어난 그날 밤부터 시작해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나는 좀더 요점에 집중할 참이다. 정말이지, 그 인간은 너무 장황하게 잡설이 많았다.
내 이름은 데커드, 형제 중 동생이다. 죽은 자가 돌아왔을 때 내 나이는 열넷이었다. 그날은 음식이며 울타리를 수리할 목재 등의 물건을 사러 아버지와 마을에 나가 있었다. 우리 농장은 윈드헬름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었고, 말이 끄는 수레에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저녁시간 즈음에 우리는 처음으로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길을 지나려는데 그것이 느릿느릿하게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웬 술주정뱅이인 줄만 알았다. 그는 우리 말을 향해 휘적휘적 움직였는데,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너무 느렸다. 그는 그냥 크게 휘청이더니 땅에 넘어졌다. 그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그저 그 멍청한 주정뱅이를 비웃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길에서 치워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돌아봤을 때는 그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여정을 계속했고 그 일에 대해서는 잊었다. 한 시간 즈음 뒤에 우리는 집 몇 채와 농장 몇군데를 지나기 시작했다. 처음 몇곳은 완전히 조용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소나 닭, 말 등 무언가의 소리는 나야 정상이었다. 그리고는 말들이 소스라쳐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조짐도 없었지만, 말들 코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불쾌한 것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한 집에 당도하자 그곳에서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와 나는 긴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아버지는 말들을 멈춰세우고, 당신이 도움을 주러 집안을 둘러보시는 동안 나는 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두드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아버지는 집 옆으로 돌아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말들이 긴장하며 안절부절하는 동안, 나는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두려움은 없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는 몰랐다. 그러다 아버지가 패닉 상태로 집 주위에서 뛰쳐 나오셨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겁에 질린 걸 보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모퉁이에서 너무 급하게 뛰쳐나오시는 바람에 거의 발이 걸려 넘어지실 뻔했지만, 한손으로 균형을 잡은 채 계속 달려오셨다. 말들에게 당도하자 점프해서 바로 올라타시더니 마구 박차를 가하셨다. 우리는 덜컥거리며 길을 떠났고 나는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 없이 그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말씀뿐이셨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말을 달렸다. 그리고는 또다른 집들과 농장을 지나게 되었다. 몇군데에서는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멀리 떨어진 밭에서 남자 둘이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광경은 몇마일 동안 계속 이어졌다. 결국 아버지는 눈에 공포를 담은 채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아버지는 말을 멈춰세우시고는, 말에서 내려 말들을 수레에서 풀어주셨다. 그리고 다시 올라타시고는 계속 가자고 말씀하셨다. 이제 바로 집에 가야 하니 가능한 한 빨리 말을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을 달리는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아마도 한 시간이 채 안되었을 것이다.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나는 무슨 일이 있었든지간에 도처에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와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간 내에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내 안중에 없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게 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비통한 울부짖음이 들려왔을 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문앞에 당도했을 때 나는 문자 그대로 넋이 나갔다. 아버지는 피웅덩이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가슴에 어머니의 유해를 안고 계셨다. 어머니의 배에는 큰 구멍이 뚫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실제로 어머니의 척추가 눈으로 환히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의 자궁,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있던 곳에 이제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엉겨붙은 살점과 찢긴 거죽만 매달려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걸 깨달을 새도 없이 나는 그저 충격에 빠져 논리정연한 사고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머니의 남은 몸에는 여기저기 살점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무엇인가에 물린 자국 같았다. 형은 옆에 누워 있었는데, 형은 더 심각했다. 형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내가 태어나 들은 것 중 가장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그뒤로 더 끔찍한 것도 들어보긴 했지만, 그날 밤에는 그것이 최악이었다.
몇달이 지나 이 책을 적으며 돌이켜봐도 아직도 모든 것이 뚜렷하고 생생하다. 눈에 들어왔던 살점 하나, 핏덩이 하나하나까지. 온 사방이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그 냄새, 살점이 썩어들어가는 그 끔찍한 냄새.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소리다. 아버지는 통곡하고 흐느끼며 침을 질질 흘리시다가, 마침내는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에 빠지셨다. 아주 정신줄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 정도에 가까웠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아버지를 집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나도 여전히 멍한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아버지의 충격이 나보다 더 심각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아버지를 돌보아야 했다. 그날 밤은 곳간의 다락방에서 잠을 청했다.
우리는 시신을 태웠다. 하루가 지난 어느 때였다. 아버지는 다음날 해가 뜰 즈음에 정신이 돌아오셨다.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우리는 말 없이 장례를 치뤘다. 우리 둘 중 아무도 추도문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으랴.
어머니의 성함은 미리암, 형의 이름은 조나스였다. 이제 이 책에 기록되는 이름자 외에는 가버린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정말로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다.
이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이후 기운을 되찾으시고, 할 수 있는 한 놈들을 찾아내어 죽이러 가셨다. 그때의 우리는 물론 아직도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하고 죽여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아버지는 날 잘 가르쳐 주셨다. 검과 철퇴를 휘두르는 빼빼 마른 열여섯짜리 소년. 나는 책을 치워버렸고 농장의 기억은 잊혀졌다.
아버지가 언급하셨던 적은 없지만, 분명 예전에 전투의 경험이 상당히 있으셨던 모양이다. 농장 근처에 있던 무기 창고로 가서 당신과 내가 쓸 무기를 꺼내오신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지가 썩은것들 무리를 보내버리는 걸 처음으로 보던 때 나는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아버지는 내가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두려웠지만, 결국 다들 그러하듯이 내게도 점점 그것이 익숙해져 갔다.
우리는 길을 떠나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 아버지가 왜 그 방향을 선택하셨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아침햇살을 받아 생기는 그림자가 부린 마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을이 지는 저녁해의 눈부신 광채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그러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냥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생존자들을 만나 함께 여행했다. 썩은것들을 만나면 놈들을 치워버리고,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이야기는 항상 같았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실로 가득한 이야기. 이 책을 읽을 정도로 오래 살아남은 당신이라면 알 것이다. 당신도 누군가를 잃어보았을 것이고, 당신이 발견하거나 빚어낸 어떠한 무기든 피를 흘리는 채 죽음과 대면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바로 내가 기대하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전부 다 되새겨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야영했고 죽여나갔다. 때로는 죽은 자들하고의 문제보다 다른 생존자들과의 사이에서 생기는 일이 더 많았다. 질이 안좋은 인간들은 사리사욕 때문에 안좋은 상황을 일으키곤 한다. 때때로 그들의 눈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시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는 그 눈. 그래서 우리는 대개 우리 둘만 여행하곤 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누군가와 함께 야영지를 꾸린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누군가의 목숨보다는 그가 지닌 장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자들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니까.
아마 여자와 함께 여행했다면 문제가 더 많았을 것이다. 한 번은 여자들을 사슬에 묶은 채 마치 개처럼 끌고 다니는 남자들 무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거래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그들 무리 한가운데로 바로 걸어가셨다. 그리고는 단 몇초만에 놈들을 하나하나 베어버리셨다. 내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땅은 금새 피로 물들었고 놈들은 그저 이 죽음의 땅에 즐비한 또다른 시체 쪼가리로 변했다.
아버지는 여인들을 풀어주시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의 방향을 알려주셨다. 그날 밤 여인들은 우리와 함께 야영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새셨다. 내가 밤 동안 꾸벅꾸벅 졸면서 눈을 뜰 때마다 아버지는 앉아서 보초를 서고 계셨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여인들을 마을로 보내주셨다. 그녀들이 마을로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닌지, 혹시 그랬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둘 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종류의 만남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매우 운이 좋았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검술을 과소평가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매일같이 훈련했고 내 실력도 점점 나아졌지만, 나는 결코 아버지와 같은 타고난 자질은 갖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대개 둘만 여행하며 서쪽으로 서서히 움직여 갔다. 본능적으로 다른 무리를 피한 덕분에 불쾌한 만남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길은 외로운 곳이었고,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더 길었다.
아마도 이 길이 우리를 화이트런의 부서진 신전으로, 그리고 제비디아의 일지로 인도했을 것이다. 처음 일이 생겼던 뒤로 몇달이 지난 때였다. 어느날 밤 장대비를 그으며 신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동안에 제단 앞에서 그 일지를 발견했다. 참 엿같은 은신처였다. 그뒤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난 지금 가진 모든 것과 바꿔서라도 그때 우리가 그냥 폭풍을 무시하고 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멈춰서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책을 집어들고 거기에 빠져드셨다. 아버지가 애초에 왜 그 책을 집어드셨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뭐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성경책? 그게 대체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길래?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읽고 또 읽으셨다. 그리고는 내게도 읽게 하셨다. 그리고는 또 한 번 읽으셨다. 아무래도 빠져들었다기보다는 사로잡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아버지는 그 책을 제비디아의 제수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씀하셨다. 그녀의 이름은 '사라'. 아버지는 그녀를 마치 직접 아는 사람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루미루아와 소환에 대해, 마법사 길드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들의 실패의 해답이 그 책 안에 있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 생각이 거의 맞았을 것이다. 세상 일이 돌아가는 법이란 참 재미있다.
사라는 화이트런에서 머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어차피 우리가 가던 방향에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이것이 섭리라고 생각하셨다. 우리는 그 일지를 발견해서 전해줄 운명이었다고, 그리고 이 정보를 통해 루미루아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기셨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이 정말로 지랄맞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부터 말해둬야겠다. 글쎄, 그녀의 남은 조각이랄까,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겨우 며칠간의 여행 끝에 마을에 당도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육당해 있었다. 생존자는 셋이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 하나와 그의 여동생, 그리고 또다른 여인이 있었는데 그둘 중 누구도 아는 자가 없는 것 같았다.
마을이 습격당할 당시 그들은 창고에 몸을 숨기고 문을 막은 덕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듣고 있나 제비디아, 이 멍청한 새끼야? 창고라고! 창고에 숨으니까 살아남았다잖아!
우리는 사라가 남편의 성을 따랐으리라 추측하고 사라 할프위치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우리 생각이 맞았다. 남자의 여동생은 그녀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녀에게는 할프위치 가에 대한 어떠한 호의도 남아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녀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땅에 침을 뱉었다. 짐작건대 증조할머니 대에서 가문의 이름과 관련된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라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했던 것과 마주했다. 그저 우리 코에 익숙해진 것보다 좀더 부패가 진행된 냄새만 가득했다. 그녀와 함께 있던 다른 누군가는(그 참상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세 명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있었다. 하지만 살육당한 것으로 보아 또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벽에는 남부변두리 성소라는 문구가 그들의 피로 적혀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말 없이 오랫동안 그것을 응시했다. 결국 아버지는 배낭을 들어올려 어깨에 툭 걸치시고는, 나를 한 번 쳐다보시고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나는 벽에 쓰인 피 글자를 일분 정도 더 바라보고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그곳에는 아무런 해답이 없었다. 오직 의문만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났던 세 사람은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왔던 것처럼 황급히 떠났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사라에게 일지를 전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일종의 절망감에 빠지신 게 분명했다. 아마도 일지가 이제 온전히 당신의 몫이고, 아무에게도 전해줄 자가 없다는 것에 어떤 부담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그에 관해서 어떠한 언급도 없으셨으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야영지 모닥불 옆에서 매일 밤 그 일지를 읽고 또 읽으셨다. 그 일지가 아버지의 버팀목이 된 것 같았다.
그때 나로서는 처음으로 사람들은 아버지들에 대해 진정으로 알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들이 살았던 삶,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그분들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와 그것을 곱씹어봐야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리버우드를 지나, 동쪽으로 세계의 목이 어렴풋이 보이는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우리는 헬겐을 거쳐 남쪽변두리 성소로 향했다. 그것은 오랜 여정이었지만, 적어도 목적지는 확실했다. 그 길에서 루미루아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곳곳에 절망이 가득했다. 생명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남쪽으로의 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우리가 남부변두리 성소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왜, 벽에 그들의 피로 문구를 썼던 것일까? 대체 누구를 위해서? 우리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은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마침내 남부변두리 성소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폐허와 파괴 외의 새로운 것은 말이다. 찾은 것이라곤 급히 떠난 흔적이 역력한 버려진 군용 야영지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그저 야영지를 꾸리실 뿐이었다.
우리는 잔해 속에 야영지를 만들고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막 잠에 빠져드는 순간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릿하고 지성미가 있는, 거의 천사의 목소리에 가까운 소리였다.
'세바스티안 케인.' 목소리가 말했다.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함께 모닥불을 쬐어도 될까요?'
아버지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모습을 보여라, 마녀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마치 암흑이 눈에 보이는 듯 사방을 둘러보셨다.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마음도 없습니다. 검을 치우시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찾아 헤매던 해답을 스스로 없애시겠습니까?'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아버지가 물으셨다.
'저는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봅니다. 저는 한동안 당신을 지켜봐 왔습니다. 세바스티안, 탐리엘의 챔피언이여.' 목소리가 말했다. '저는 당신이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분임을 압니다. 부인과 아이를 위해 복수를 하시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악이 이 세상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쓰러뜨려 잠재우실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의 노력이 없다면 그런 미래가 도래하겠지요.'
'그럼 할프위치 가의 벽에 메시지를 남긴 것도 당신인가?' 아버지가 물으셨다.
'실로 그러합니다.'
아버지는 검을 집어넣지는 않으셨지만, 확실히 그 끝을 내려 땅을 향하셨다. '그럼 오시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함께 모닥불을 쬡시다.'
그녀는 마치 아무데도 없는 곳에서 생겨나듯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단 몇걸음만에 모닥불 옆에 와 있었다. 내 생전 그녀같은 존재는 처음 보았다. 그녀에게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불길함이 있었다. 그녀는 옷과 이어진 것 같은 특이한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꼭 매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과 그 위의 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기묘한 느낌이었다. 망토는 그녀의 손목에 붙어 있어 그녀가 팔을 들면 마치 날개처럼 보일 것 같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깃털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신도 그 검을 치우셔도 좋습니다, 젊은 데커드여.'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내가 검을 빼어든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검을 내리며 볼을 붉혔다. 내심 꺼져가는 모닥불의 희미한 빛이 그것을 가려주길 바랐지만, 그녀라면 어떻게든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아, 장작을 좀더 모아오거라.'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몸을 돌리기도 전에, 그녀가 모닥불을 향해 손을 한 번 휘저었을 뿐인데 불길이 다시 생생히 피어났다. '그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와서 앉으시지요.'
손님인 그녀가 우리 모닥불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 느낌이 이상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말에 따랐다.
'저의 이름은,' 그녀가 말했다. '틸라-나라고 합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아주 먼 거리를 왔습니다.'
'이 괴물들을 멈춰줄 수 있겠소?' 아버지가 질문하셨다. 아버지에게는 빙빙 돌려 말하는 법이란 없었다. 항상 돌직구이셨다.
'아니오, 그러지 못합니다.'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루미루아라고 불리는 이 괴물들 말이오, 그것들은 켈도르라고 알려진 사악한 마도사가 만들어낸 것들이지.' 아버지가 바로 그 이름을 꺼내드셨다.
'맞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제비디아의 일지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되셨군요.'
'루시오가 만났던 여행자.' 아버지가 끄덕이셨다.
'켈도르는 자신의 작품을 흐뭇해 하겠지요.' 그녀는 말했다. '이 땅에 죽음과 공포를 퍼뜨리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그 자를 아는 거요.' 아버지가 질문하셨다.
'그와 저는 이터니아라 불리는 같은 세계에서 왔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예상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제비디아의 일지를 통해 이미 알아야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다.'
'그럼 이 괴물들이 당신의 세계로부터 와서 우리를 파괴하는데, 당신은 그동안 손 하나 깜짝 안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던 건가?' 아버지의 폭탄같은 발언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저는 이터니아의 위대한 힘과 위대한 비밀의 지킴이이자 수호자입니다. 그것은 저의 일생에 걸친 사명이자 목표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 힘의 일부와 소통하여 해야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캐스트... 저의 고향의 벽 밖에서는, 저는 그 힘들에 대해 어떠한 접근도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말 없이 거세게 불타오르는 모닥불을 향해 손짓하셨다. '그럼 이 짓거리는 다 뭔데?'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신비로운 여인은 그저 미소지었다. '그러한 단순한 소환술 장난으로는 켈도르가 시전한 마법을 깨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세계에서는 본질적으로 무력합니다.'
아버지는 이 대답에 수긍하시는 듯했고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켈도르는 우리가 신화라고만 여겼던 고대의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의 이름은 주문석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 힘을 사용하여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고, 마법사 길드로 출정시켜 그 여정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학살하며, 그들의 각성길에 죽음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그 수는 늘어만 갑니다. 지금도 마법사 길드는 그들과 전쟁 중이며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일단 마법사들이 전멸하고 나면 루미루아에게는 임무가 사라지고, 그저 단순히 배회하며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살육을 일삼아 탐리엘이 죽음의 땅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켈도르는 당신의 세계에 주문석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힘으로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럼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오. 우리가 그것을 파괴할 테니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답했다. '주문석은 수호자와 결속되어 있습니다. 돌의 정수는 수호자와 융합되어 그를 보호하게 됩니다. 그가 살아있는 한, 루미루아는 역병처럼 당신의 세계를 휩쓸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때로는 오시리스, 때로는 켄티-아멘티우. 때로는 라아브 알마우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망자의 군주라는 뜻입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당신의 세계에서 당신들의 무기로는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드릴 이 무기로는, 마법의 수호막을 깨고 주문석의 저주를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하면서 깃털 망토 아래에서 검을 하나 꺼내어 그것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런 것을 대체 어디에 감추고 있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힘의 검인가?' 아버지가 질문하셨다.
설령 아버지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더라도 틸라-나는 그 이상 크게 움찔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대의 것이라니 아닙니다!' 그녀는 말했다. '그러한 것은 절대로 이곳에 가져와서도, 남겨져서도 아니됩니다. 이것은 단지 제가 은신처를 떠나기 전에 준비해둔 특별한 마법효과를 부여한 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켈도르의 마법을 뚫기에는 충분합니다.'
아버지는 이에 대해 의문이 있으신 것이 명백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저 손을 뻗어 그 검을 받아드셨다.
'할디어의 돌무덤으로 가시면 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분명 단단하게 보호받고 있을 것이고, 마법효과를 활성화시키기 전에 반드시 주문을 시전하셔야 합니다. 또한 들고 계신 그 검과 라아브 알마우트가 모두 들어오는 범위 내에서 주문을 읊으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가 쓰러지고, 주문석의 마법은 깨어질 것입니다. 일단 당신이 사명을 완수하시면, 검에 부여된 마법효과는 소멸될 것입니다. 당신이 읊으셔야 하는 주문은 Ma qu-a aljamjima alramaadia입니다. 자, 저를 따라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요구대로 하신 뒤 물으셨다. '마법효과가 소멸될 거라고 했는데, 주문석 본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켈도르가 가지고 있게 되나?'
'켈도르는 주문석 본체를 여전히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죽으면 마법이 오시리스를 떠나 주문석으로 되돌아 오겠지요.'
'그럼 그 켈도르란 놈은... 이 짓을 또 반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일을 끝낸다 해도 놈은 여전히 주문석의 마법을 갖고 있을 거라고?' 아버지가 질문하셨다. '그럼 이게 다 헛수고 아니오?'
'그는 실로 그의 힘을 다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한다 해도 그것은 이터니아만의 문제입니다. 저는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세계로 연결되는 그의 수단을 파괴했습니다. 그는 제가 한 일을 발견하면 분명 앙갚음을 해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마주했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희는 그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왔습니다.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어쩌면 자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의 강대한 힘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평화의 시대가 너무 길었고, 마스터들은 나약해졌습니다. 저희 세계에 닥쳐올 폭풍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길은 저희를 단련시킬 것이고, 잿더미 속에서 제가 수호하는 힘에 걸맞는 영웅이 태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당신께서 염려하실 바는 아닙니다. 당신의 세계의 운명은, 이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는 검을 바라보시고는 의심과 공포를 갖고 그것을 거머쥐셨다. '당신이 도울 수 있는 길은 더이상은 없는 거요?' 아버지가 질문하셨다. '당신이 이곳에서는 무력할지 몰라도, 달리 우리를 도울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요?'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다른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고난 속에서 어떠한 인물이 일어날 것입니다. 데커드, 당신보다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은 젊은 영웅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 영웅의 때가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영웅은 아직 자신의 운명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대로 선 채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군.'
'그리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바라건대 행운과 고대의 힘이 함께 하시기를.'
'켈도르를 상대하는 일도 잘 되었으면 좋겠소.' 아버지가 답하셨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행길이 무사하시기를 빕니다, 젊은 데커드여. 그대에게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아버지는 방금 일어난 일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시려는 듯 손에 쥔 검을 내려다 보셨다. 아버지는 마저 휴식을 취하고 아침에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 검을 '정복자'라 부르기로 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다. 혹은 그 대부분의 이야기이다. 나머지는 내가 책의 서두에서 밝힌 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데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는 할디어의 돌무덤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루미루아 떼가 지키고 있는 라아브 아마우트의 야영지를 찾아냈다. 애초에 왜 그런 괴물이 보초가 필요한지 그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말이다.
놈들은 어쨌든 우리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을 뜯어먹고 뭐 어쩌느라 말이다. 아버지는 놈들 틈을 뚫고 몰래 들어갈 길을 찾아내고는 라아브 아마우트를 정면으로 상대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라아브 아마우트를 처치하는 동안 나는 숨어서 지켜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항변하면서 함께 놈을 쓰러뜨리자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검은 하나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아버지가 적 위로 솟아있는 바위에서 뛰어내려 놈을 급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거의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착지할 때 일종의 바람이 불어와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 때문에 주문을 제대로 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검을 내리쳤을 때, 치명타가 되어야 했을 그 공격은 마치 돌을 내리치는 것처럼 아버지를 뒤로 튕겨내 버렸다.
참으로 완벽한 결말 아닌가? 우리가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마침내 이런 끝을 맞았다는 게 말이다. 탐리엘의 개똥같은 신들 따위 다 뒈져버려라. 이터니아의 좆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고 이런 개죽음 따위를 당할 분이 아니셨단 말이다.
라아브 아마우트는, 급습의 충격에서 회복하자 아버지에게 다가와 목을 잡아 집어들고는, 그대로 목을 조르며 공중에 띄웠다. 아버지는 최후의 순간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 쳐다보셨다. 아버지는 검을 내게 던졌고 그것은 내 발치 바로 앞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 소리없이 말씀하셨다. '도망쳐.'
라아브 아마우트는 다른 한 손을 뻗어와 아버지의 머리에 얹고 으스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아버지의 비명소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놈의 손에 주먹이 꽉 쥐어지더니, 피와 뇌수가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오며 머리를 잃은 아버지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너무도 끔찍했지만, 적어도 비명소리는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무엇을 했냐고? 당신은 어땠을 것 같나? 나는 검을 집어들고 도망쳤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등 뒤로 라아브 아마우트가 웃는 소리가 들렸던가? 아니면 그건 단지 내 상상이었나? 나는 모른다. 마침내 나는 쓰러졌다.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혹은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냇가가 근처에 있었다.
냇가의 물을 마시고서 다음에 할 일을 결정했다. 내가 결정한 것은, 이 일지를 적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퀘스트를 완수해내는 것이다. 나는 이 빌어먹을 짓거리에 이제 신물이 난다.
뒈진 놈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사악한 마도사며, 마법검이며 마술사며, 저주며, 마법이며, 아 그리고 한 손으로 사람 머리를 으깨뜨리는 그 좆같은 괴물새끼! 전부 다 오블리비언으로 떨어지라고. 난 볼장 다 봤다. 탐리엘 따위 썩어버리든 말든 알 게 뭐냐.
당신이 구할 마음이 있다면 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난 끝이다.
나는 낮에는 여행하고 밤에는 이 책을 쓰고 있다. 이번에는 동쪽이다. 동쪽으로 가면 아침에는 그림자를 볼 일이 없다. 나는 트리스트람이라는 마을과 성역이라 불리는 땅에 대해 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향한다. 내 남은 생애는 이런 미친 짓거리와 마주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하면서.
스카이림의 국경에 있는 부서진 투구 동굴이라는 곳에 이 일지를 남겨놓을 것이다. 당신이 이걸 발견한다면, 일단 알아둬야 할 것은 나는 그 마법검을 유혈의 왕좌에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거기로 가서 검을 찾고, 할디어의 무덤으로 가서 루미루아의 저주를 계속해서 일으키는 그 괴물을 처치하길 바란다.
그리고 주문, 그 주문을 잊으면 안된다. Ma qu-a aljamjima alramaadia.
이제 이걸로 내 이야기는 끝인 것 같다.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다. 시작할 때는 제비디아를 씹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렇게 한심할 데가 있나? 그 제비디아 할프위치보다도 더 장황하다니! 그래도 나는 무릎에 화살을 맞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건 정말로 엿같은 일이라고 했다.
누군가 이 책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을 발견한 당신이 용기를 내어 루미루아의 마법을 깨뜨리기를 바란다. 당신이 그 마법검을 찾고 라아브 알마우트를 처치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실패했던 그 길에서 당신은 성공하기를 바란다. 틸라-나가 켈도르를 막을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이터니아에서 놈을 쓰러뜨릴 힘을 지닌 누군가가 존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는 내 남은 생애를 평화롭게 보내기를 바란다.
그럼 이름을 모르는 낯선 이여, 이만 작별이다.
데커드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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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가 게임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D.C.라는 약자가 나올 때부터 설마 했는데 바로 그분이군요. 좀비를 피해서 하필 트리스트람으로 가다니 불쌍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