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다빈치의 일기
1
이제 이 생활도 끝이야. 레아와 나는 은퇴한다. 이제 고용주와 계약도 없고, 어둠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일도, 더이상 숨어다니는 일도 없다. 레아는 내가 평범한 생활에 금방 질릴 거라고 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군. 내가 아끼던 사람이 죽는 건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 이제는 어딘가에 정착해서 그동안 모았던 돈을 쓸 때도 됐지. 그러니 이제 과거와는 안녕, 성실하게 일하는 정직한 부부로 새출발이다.
2
리버홀드에 막 우리 집을 장만했다. 여기 생활은 참 좋아. 이만하면 충분히 평온하고 나름대로 조용한 곳이지. 주민들은 농부가 대부분이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너그럽다. 모든 변경 무역지를 통틀어 봐도 타문화에 굉장히 열려있는 곳이야. 아르고니안과 카짓 부부를 보고 별종 취급을 하는 사람도 없어 보이고.
레아는 우리집 옆에 있는 마을 고아원을 종종 화제로 올리곤 한다. 아내는 가족을 원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가족을 꾸릴 생각을 하면 좀 두렵다. 우리 부부처럼 전문 암살가로 훈련받은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군.
3
나는 지역 광산에 취직했고, 레아는 고아원에 막 일자리를 얻었다! 어제 그곳에 들렀는데, 아무래도 내가 아버지가 될 모양이다. 거기에서 본 카짓 남자아기 둘이 우리 부부의 심장을 녹여버렸으니. 아마 쌍둥이인 모양인데, 하나는 털색이 금빛이고 하나는 특이한 파란색이다. 레아가 그 아기들을 품에 안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그냥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입양 문제를 두고 밤을 새워 이야기했다. 아내는 자기 마음 같았으면 벌써 진작에 그 아기들을 데려왔을 거라고 했다. 나는 레아에게 좀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내 마음도 정해진 것 같다. 아내는 정말 멋진 엄마가 될 거야.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내를 사랑하니 그녀의 어떠한 것도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지. 이제 우리 무기는 전부 지하실에 넣어 문을 잠그고, 아이방으로 쓸 공간을 마련해 놓아야겠군.
4
우리도 이제 어엿한 부모다! 아이들 이름은 예전 길드 친구들을 따라 퍼거스와 이니고라고 지었다. 고아원의 아주머니에게서 아이들의 과거사를 약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니고와 퍼거스는 여기에서 50마일 떨어진 폐가에서 한 병사가 발견해 데려왔다고 한다. 병사는 쉴 곳을 찾던 중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폐가에서 절반쯤 건초로 감춰진 채 강보에 싸인 카짓 남자아기 둘을 발견했다더라. 아이들 품에는 생모가 쓴 편지가 한 통 끼워져 있었다고. 편지 원본을 보니 너덜너덜 찢기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중에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베껴가고 싶다고 부탁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탈라는 그녀의 아이들이 무사히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몇분 사이로 태어난 쌍둥이예요. 그래도 보시다시피 서로 닮지는 않았지요.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화창했던 하늘이 갑자기 검은 암흑으로 뒤덮이면서 나는 천막 속에서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란을 들었습니다. 그때 첫째는 이미 세상에 나온 상태였고, 둘째가 막 세상에 나오던 순간 저 밖은 대낮인데도 마치 한밤중처럼 깜깜해져 있었어요. 나는 아이들을 품에 안았고, 쌍둥이의 울음소리가 마치 태양을 다시 불러오기라도 한 듯 하늘의 어둠이 걷히며 환호하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나는 미소지으며 출생 중에 혹시 세번째 달이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그럼 사람들 말처럼 메인이 도래한다는 신호일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탈라는 참으로 어리석었지요. 아탈라는 저주받았습니다. 세번째 달같은 건 없었어요. 오직 암흑뿐이었어요.
몇주가 지나자 둘째의 털이 파란색으로 변하면서 내 아이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번 달의 흉조로부터 거의 200년이 지났지만, 그 파란 솜털을 보자마자 장로님은 그것의 의미를 바로 알아보셨어요. 내 아이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에 끔찍한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고요. 아탈라는, 아탈라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더이상 믿을 수 없었어요. 그이의 심장은 우리보다 달에 더 크게 좌우되고 있었어요. 우리가 처한 상황에 깊게 상심하면서도 그이는 장로로 태어났고, 메서와 세쿤다를 달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전날 밤 나는 아무도 없는 가운데 있을 리 없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이 있었어요. "아탈라, 도망치거라. 길은 열려 있다. 그대의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거라." 나는 아이들을 들쳐업고 사막 속으로 숨어 달아났습니다. 나는 집에서 멀리멀리 떠나왔지만 뒤쫓는 가족들에게 점점 따라잡히고 있었어요. 그들은 어떻게든 피를 봐야만 했습니다. 차라리 내 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전에 들었던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들려왔습니다. 지금 당장 이곳을 홀로 벗어나 추적자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요. 여인은 내 아이들이 이곳에서 안전한 손에 의해 무사히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던 만큼, 나는 그녀를 믿었습니다. 이 편지를 발견하시는 분께, 부디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무사히 보듬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 충분히 이해할 나이가 되면, 아탈라가 너희를 정말로 사랑했노라고 전해주세요."
레아는 자기 고향 땅에서 그렇게 야만적인 광신 행위를 하는 부족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그리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이동하는 모래 사이에는 아직도 바깥과 고립되어 번성하는 잊혀진 부족들이 있다고들 하니까. 아탈라도 분명 그런 곳에서 난 사람일 테지. 그녀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지금 안전하고 사랑받는 집에 있다. 레아와 나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생각이다.
아이들 머리가 충분히 굵어지고 나면, 녀석들의 어머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뤘는지를 말해줘야지. 가슴아픈 이야기니까 있는 그대로 전부 말해줄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군. 어쨌든 그건 나중에 걱정할 문제다. 지금 아이들은 여기에서 행복하고, 아이들 덕에 우리도 행복해. 부디 이 행복이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5
레아와 나는 막 작업을 마치고 온 참이다. 알아, 우리가 은퇴한 것 안다고! 그래도 녹슨 근육을 풀기엔 딱 적당한 건수였고, 상대도 겨우 범법자 무리 하나였거든. 놈들이 마을에서 겨우 몇마일 떨어져 있으니까 사람들도 무서워하고 말이야. 그래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들은 고아원에 있는 레아의 직장 동료에게 맡겨두고, 장비를 챙겨서 일을 샤샥 처리해 버렸지. 히스트시여 아 정말 기분 좋았어! 갑옷이 몸에 좀 꽉 조였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레아와 내 솜씨가 아직 녹슬지는 않았더라고. 우리 사랑스러운 아내님. 고아원에 다시 가보니 레아의 동료가 지하실로 안내해 주는데 거기에서 이니고와 퍼거스가 거미를 잡으며 놀고 있었다. 녀석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만 꽉 껴안아주고 말았지.
6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무기를 다루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저 밖이 원체 험한 세상이니 조금씩 훈련시키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데 우리 부부는 뜻을 모았다. 이니고는 금새 활쏘기에 눈부신 재능을 보이고, 퍼거스는 검을 좀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벌써부터 각이 딱 잡힌 것이 아주 자질이 남달라! 녀석들 보면 흐뭇해 죽겠다니까. 퍼거스는 벌써 단호하고 사려깊은 아이로 변하고 있다. 이니고는 굉장한 반사신경에다 좀 사차원스러운 것이, 가끔은 진지한 상황이라 웃으면 안되는데도 웃음을 터뜨리게 하곤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녀석들 형제애가 정말이지 깊다는 거지. 종종 하찮은 일로 옥신각신 다투다가도 조금만 위험한 낌새를 느끼면 바로 서로의 등뒤를 굳건히 지켜주곤 한다.
내가 광산에 내려가있는 동안 녀석들은 남은 하루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레아와 함께 보내고 있다. 사실상 녀석들은 고아원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셈이군. 뭐 괜찮다. 녀석들에게 나쁠 것도 없고, 종종 다른 아이들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니까.
7
오늘 이니고가 불쌍하게도 시장에서 작은 싸움에 휘말렸다. 동네 꼬마애들 몇이서 녀석의 털이 파랗다고 놀려댄 모양이라! 그 조그만 불량배 놈들! 이니고에게 마침 활이 있었으면 그놈들에게 한두 수쯤 가르쳐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자리에 퍼거스가 있었으면 일이 더 험악해졌겠지. 두 녀석 중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하게 해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 만일에 대비해서 레아가 아이들에게 맨손 싸움 요령 몇가지를 가르쳐줬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지만 그래도 일이 심각해질 때가 왕왕 있으니까. 애들을 선동한 주모자 녀석의 부모에게 말을 했더니, 과연 부전자전 아니랄까봐 자기 아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면서 날더러 더러운 도마뱀이라고 하더군! 어쩌면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열린 마을은 아니었던가 보다.
8
오늘 레아가 아들 녀석들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무기를 갖고 노는 걸 발견했다. 녀석들 대체 전시함 자물쇠는 어떻게 딴 거지! 다행히 이니고는 아직 번개 시위를 당길 힘은 없고, 벼락도 너무 무거워서 둘다 휘두르지는 못한다. 만약 집안에서 그 마법 효과가 터지는 날엔 어떻게 될지 상상해봐! 번개와 벼락은 당장 안전한 장소에 꽁꽁 숨겨뒀지. 이 말썽꾸러기들, 한시라도 눈을 떼면 안되겠어!
9
슬프면서도 흥분되는 하루였다. 이주하는 거대한 거미떼가 리버홀드를 습격하는 바람에 마을 사람 셋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에서 싸울 능력이 있는 건 우리 가족뿐이었으니, 무기를 짊어지고 그 괴물들을 처치하러 나섰다. 솔직히 말해 아들 녀석들이 대부분을 해치웠지만. 녀석들 자기 무기를 시험해볼 생각에 어찌나 흥분하던지, 그리고 내가 팔불출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지 환상적인 솜씨였다니까.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 꽁꽁 숨어있는 동안 레아와 내가 열 마리를 해치웠는데, 눈을 들어보니 이니고와 퍼거스가 벌써 나머지를 전부 처리했지 뭔가. 어찌나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열성적으로 싸우던지. 퍼거스는 마치 죽음을 몰고 오는 고요한 강철의 회오리 같았고, 이니고는 화살과 어그로의 폭풍을 날려대는 것이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더군. 그녀석은 아마 교수대 위에서도 농담을 할 테지! 아들놈들 이제 저렇게 다 커서, 벌써부터 리버홀드를 떠나 모험할 얘기를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녀석들이 좀더 자리가 잡힌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약자들을 돕는 데 기술을 쓰고 싶어하는 게 눈에 딱 보이니 원. 그래도 서로가 있는 한 녀석들이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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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쪼그만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어른이 되었을까. 작은 솜뭉치 아깽이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레아와 나는 아들놈들이 모험을 떠나는 걸 허락하기로 했다. 이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가 되었으니 우리는 복받은 거야. 아들 녀석들에게 우리의 가장 값진 무기들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이니고에게는 레아의 활 번개를, 퍼거스에게는 내 검 벼락을 줘야지. 번개와 벼락이 부디 우리 아이들을 무사히 지켜주고, 녀석들과 맞서는 적들의 심장을 공포로 깨부수기를 빈다.
일기 적기는 그만 하고 녀석들 짐꾸리는 거나 도와야겠다. 사랑하는 퍼거스와 이니고야, 부디 다친 데 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오거라. 벌써부터 너희들이 그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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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이 갔다. 우리 꼬마들, 우리 아들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결실이 떠나갔다. 레아와 나는 벌써부터 이 텅빈 집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전과 다를 바 없지만, 모든 것이 전과 달라졌다. 몇년 뒤에는 아들놈들이 돌아오겠지, 분명 훌륭한 사내로 성장했을 그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그래서 녀석들의 방이 싸늘하게 식지 않도록 지킬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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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달부가 아들 녀석들의 새 소식을 전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은 지도 거의 일 년이 넘었는데. 즐겁게 잘 지내고 있고, 그동안 많은 모험을 겪었고 이제는 시로딜로 향하는 중이란다. 녀석들, 여행 취미가 붙어서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에 가능한 한 탐리엘 여기저기를 다녀보고 싶다는구만. 잘 지내고 있다니 이보다 기쁠 순 없다. 편지를 받고 우리 부부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어서, 여관에 가서 몇잔 쭉 들이키며 축배를 들었다. 밤새 우리 아이들을 향해 건배하고 또 건배를 했다. 녀석들은 행복하고, 안전하고, 여전히 둘이 함께 있단다. 그거면 이 아버지는 더 바랄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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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고와 퍼거스에게서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 됐지만, 잘 있을 거라 믿는다. 모험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편지쓸 틈이 없는 거겠지. 집에 돌아오기 전에 모험을 만끽하게 놔두련다. 소싯적 방랑벽 깨나 있었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랴. 레아와 나는 무미건조한 삶에 점차 지쳐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만의 여행을 나서보면 어떨까 싶다. 약간의 스릴과 모험을 가미해서. 그 맛을 본 지도 참 오래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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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다시 길 생활을 하게 되다니 꿈만 같다! 오늘 마을을 지나가는 행상단 하나가 경호원을 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완벽해. 여행과 모험이 반반씩 섞인 여정이라. 그리고 혹시 알아, 어쩌면 퍼거스랑 이니고와 우연히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 우리는 내일 행상단과 합류하기로 했다. 레아는 지금 방어구를 고르고 있다. 내 생각엔 경갑과 중갑 한 벌씩을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듣자하니 아무래도 산적들 영역을 통과하게 될 것 같으니까. 물론 우리가 당해내지 못할 것은 없지. 레아가 날 부르고 있군. 이제 그만 적고 나도 내 짐을 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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