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림 번역보관소


이니고.


왜 뭐 하려고?


자네가 잠자리 군과 만난 이야기를 해봐.


그건 꽤 긴 이야기인데. 정말 듣고 싶은가?

좋아. 잠자리 군도 자기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고 싶다고 하니까.


계속 해봐, 이니고. 듣고 있어.


얼굴의 이 상처가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네.

리프튼으로 가던 중에 윈드헬름에 잠깐 들렀지. 난 지치고, 피로 낭자하고, 냄새도 좋지 않은 상태였어.

내가 원한 건 단지 따뜻한 식사 한 끼와 밤에 몸을 뉘일 곳뿐이었는데, 그조차 허락되질 않더군.

내가 도시에 발을 들이자마자 의심에 찬 눈초리들이 내 얼굴에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네.


난 너무 지쳐서 그걸 신경쓸 여력이 없었어. 그저 촛불난로 회관으로 몸을 향해서 방을 하나 빌려보려고 했는데.

난 거기서 불청객이니, 잠자리를 구한다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며 단호하게 거절당했지.

내가 수중에 돈도 있고,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거라며 설득하는 동안 건장한 남자 셋이 날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어.

여관 주인에게서 몸을 돌리고 사내들을 향해 말했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났나?" 그러자 제일 앞에 있는 자가 답하더군. "아니야, 친구."

"잠자리와 씻을 곳이 필요한 모양인데, 여기서는 구하기 쉽지 않을걸. 돈이 있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여관 주인이 방조차 내어주지 않았다니 너무하군 그래!


주인장이 의심했던 게 별로 놀랍진 않았다네. 아마 내가 카짓이라서 그랬을 거야. 어쩌면 피범벅된 내 얼굴과 무기를 보고 경계했는지도 모르지.


그놈들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는걸.


나도 그들을 믿어도 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네. 하지만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지, 어쨌든.

난 그들에게 방을 빌릴 수 있다면 기꺼이 가진 돈을 나누어주겠다고 말했어.

그들은 한 형제인데, 15셉팀만 내면 그날밤 잠자리는 자기들 집에서 내어줄 수 있다고 하더군.

어머니가 손님 식사 대접도 기꺼이 해줄 거라면서. 나야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그러기로 했지.


너무 경솔했군.


지금와서 그렇게 말하긴 쉽지만, 그때 난 너무 탈진했고 판단력도 흐려진 상태였다네.

그들은 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데리고 가더니 멈추라며 손짓했어. 그리고 제일 어린 막내가 내게 돌아서며 말하길...

"그전에 먼저, 우리가 갈 곳에 대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야겠어."

"걱정 마." 내가 답했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벽을 더듬더니, 어딘가에서 멈추고는 네 번 두드리더군.

그러자 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벽이 뒤로 미끄러지더니 횃불이 걸린 통로가 나타났다네.

"당신들 정체는 뭐지?" 벽 틈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물었지.

"너무 겁먹지 마." 하고 맏이가 답했어. "따뜻한 식사와 포근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안으로 좀더 들어가자 입구가 닫히더군.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내가 한 생각은, 난 지치고 굶주린 상태니까, 이 작자들이 날 털어먹을 작정이라면 이대로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였지.


그 통로는 어땠나?


밖에 비해서는 따뜻했어. 돌로 된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공기에 마법의 냄새가 느껴졌지.


계속 해봐.


곧바로 육중한 나무문에 도착했어. 막내가 한 발 나서더니 문을 다시 네 번 두드렸지.

맞은편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툴툴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군. 그리고 내 생전 제일 나이들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네.

"여기 손님 데리고 왔어요, 어머니." 제일 큰형이 말했지. "그럼 어여 들어와. 식사 준비는 됐으니 가서 손 씻고 오고. 올 때 뒤는 제대로 확인했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가 밀치고 들어가며 답했어. "자, 들어와 친구. 여긴 안전하고 먹을 것도 있어."


그 말대로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쓸모없는 잡동사니와 자질구레한 장신구로 가득한 돌로 된 큰 방이 나오더군.

창문도 전혀 없고 안은 깜깜했지만, 멀리 커다란 난로 근처에 침대가 벽을 지고 한 줄로 나란히 놓인 게 보였다네.

할머니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어. "돈은?" 그리고는 옹이지고 쭈글쭈글한 손바닥을 내보였지.

"물론." 돈을 건네며 내가 말했지. "여기서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성함이?"

"다들 어머니라고 부른다우." 할머니가 답했어. "손님도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고.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거든."


그리고는 긴 탁자 위에 있는 먹을 것을 권했어. 형제들은 벌써 자리에 앉아 게걸스럽게 식사 중이었지.

나도 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네. 거기 있던 수프와 고기 구이, 채소를 이러다 위장이 파열되겠다 싶을 때까지 마구 쑤셔넣었지.

식사가 끝나자 털가리개가 있는 구석진 자리로 안내되었어. 그 안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탕이 있었지.

뜨거운 목욕물 안에 깊이 몸을 담구고, 가엾은 근육들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네. 그리고 그대로 잠에 빠졌지.


목욕탕이란 게 뭐지?


커다란 단지에 뜨거운 물을 넣고 그 안에 몸을 담그는 거야. 탐리엘에서 냄새가 덜 나는 어떤 문화권에서는 아주 인기가 많은 물건이라네.

그리고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형제들이 이리저리 방방 뛰면서 춤추고 방안을 날아다니는 게 보이더군.

퍼거스가 피웅덩이 안에서 날 올려다보며 소리치는 게 보였어. '도망쳐, 이니고! 도망쳐!'

거칠고 문양이 새겨진 천장이 있는, 거대한 유리 감옥이 보였어.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밖의 많은 것들도 보였다네. 잠에서 깨자 방이 빙빙 돌며 흐릿하더군.


음식에 약을 탔었던 게 분명해!


의심도 참 많은 친구야 자네는. 아마 그래서 지금껏 살아남아 온 거겠지. 그래, 자네 말대로 음식에 무언가가 들어 있었던 거야.


계속 해봐.


아주 깊이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들리고, 옆을 바라보는 순간 내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네.

내 눈앞에 잠자리 왕이 있었어.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잠자리였다네. 그는 내 왼쪽에 있는 거대한 병 안에서 미친듯이 뱅뱅 돌고 있었어.


잠자리 군이었구나!


맞아. 하지만 지금 자네가 아는 잠자리 군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 내 눈에는 완전히 달랐다네. 어쨌든.

그때 비로소 내 몸도 병 안에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지.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입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네.

눈을 내려 손을 찾아보니 손이 사라지고 없었어. 그 대신 집게발같은 게 있는 거야.

공포에 질려서 펄쩍 뛰고는 병 안을 미친듯이 맴돌았지. 그리고 갑자기 내가 날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정말 끔찍한 악몽이군!


그렇다니까! 절대 유쾌한 순간은 아니었지. 그래도 그 와중에 긍정적인 점 하나는 있었어. 적어도 닭으로 변한 건 아니었거든.

난 한동안 윙윙거리면서 새롭게 생긴 날개에 적응하려고 애썼다네. 얼마가 지나자 어느 정도 제어가 되더군.

다시 깨닫고 보니까 내 병 옆에 있는 그 잘생긴 잠자리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크진 않았어. 내 몸이 그 잠자리처럼 작아졌던 거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에게 동료가 있었더군. 내 왼편으로 병이 줄지어 놓여 있는데, 병마다 그 안에 곤충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네.

나비와 반딧불이와 나방같은 것들도 있었어.


병 때문에 시야는 흐릿했지만 저 끝편에 네 개의 거대한 형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네. 보아하니 방 안은 이제 텅 빈 상태였어.

그중 하나가 내 쪽을 손가락질하며 웃더군. 마치 벼락처럼 울리고 무시무시한 소리였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 얼굴은 바로 "어머니"였다네.

오른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병 너머를 쳐다보니, 내 잠자리 이웃이 겁에 질려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어.


잠자리 군이 연기력이 뛰어난걸.


덕분에 영락없이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지 뭔가. 짐작하겠지만 워낙 정신이 없는 상태였거든.


계속 해봐.


"어머니"는 바로 내 병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 더럽고 거대한 손가락으로 유리를 톡톡 치더군. 이빨이 다 빠진 채 이죽거리는 웃음이 내 시야를 꽉 채웠다네.

마녀가 잠자리의 병을 집어들더니, 마구 흔들어서 한차례 노려보고는, 바닥에 다시 쾅 하고 내려놓았지.

그리고 이번엔 내 왼쪽의 다른 병을 집어들더니, 뚜껑을 열고 안의 나방을 끄집어 내었어. 나방은 마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힘없이 파닥거리고 있었지.

마녀는 나방을 잡고 내 병으로 오더니, 그 가련한 생물체를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네. 몸이 잇몸 사이에 짓눌려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어.

그때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지.


자네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가 한둘이 아닌 모양이군.


전엔 전혀 그런 적이 없었는데, 형을 잃고 부모님까지 돌아가신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좀 그랬지. 게다가 잠자리까지 되고 나니 내 정신이 좀 뒤죽박죽이었어.

그때 당시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니까 소스라쳤었지.


그 목소리는 어땠나?


점잖고 차분했어. 마치 학자가 둔한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목소리였지.

목소리가 말하길, '잘 들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마녀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을 거야.' 마녀는 나방을 삼키고 내 병을 다시 집어들었어.

난 죽은 척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지. 눈꺼풀이 없어진 상태라 마녀가 병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만 했네.

마녀의 거대한 손이 내게 다가오다 멈추고는, 뒤로 물러갔지. '가만히 있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말했어.


힘들었지만 간신히 버텼다네. "어머니"는 내 병을 치켜들고는 날 요모저모 연구했지. 이리저리 흔들고는, 다시 노려보았어.

"기절했구만!" 지옥과도 같은 목소리로 마녀가 말했어. "겁에 질려 맛이 갔나?" 마녀는 내 병을 다시 내려놓고는 돌아서 갔다네.

"먹이를 좀더 잡아와라! 오늘밤 먹을 게 부족해!"

다른 거대한 형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와서 보니 형제 중 맏이였어. "어머니!" 그가 말했지. "그러게 왜 그렇게 겁을 주고 그래요?"

"그야 바둥대고 오들오들 떨 때가 더 맛있으니까 그렇지! 너도 느낌 알잖니!" 아들이 한숨을 내쉬고는, 동생들을 깨워서 자리를 뜨더군.


도무지 말도 안되는 얘기야!


말이 된다네, 친구. 특히나 보는 눈을 살짝 옆으로 돌려서 그동안 알던 상식을 귀 밖으로 줄줄 내보낸다면 말이야.


정체성 혼란은 자네 인생 이야기의 주된 화두 같군.


그래, 자꾸 되풀이되는 주제라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몸이 곤충이 돼 있다면 자네라도 불가항력이었을 거야.


계속 해봐.


"어머니"는 돌아서서 침대로 자러 가더군. 그러자 잠자리가 머릿속에서 마구 외쳤어.

'병이야! 병 유리벽을 쳐!' "어머니"는 내 병 바닥을 선반 가장자리에 걸쳐놓았었거든.

나는 있는 힘껏 파닥거리면서 최대한의 속도로 유리벽을 향해 돌진했다네. 뒤로 쿵 튕겨나가고는 다시 부딪치고, 튕겨나가기를 반복했지.

이윽고 내 병이 선반에서 넘어져서 돌바닥으로 떨어졌다네. '좋았어!' 잠자리가 외쳤지. '계속 가만히 있어. 마녀가 오고 있으니까.'

그래서 온통 깨진 유리조각 사이에 계속 누워있었지. 마녀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다가왔어.

날 밟아 으깨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대신 욕설을 내뱉더니 무릎을 꿇고 앉더군. 관절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새 병에 처넣어야겠구만... 아니면 지금 당장 먹어버릴까? 맛은 좀 별로겠지만 확 그래버릴라!"

본능적으로 날개를 파닥이고, 어디론가 날아서 숨어버리고 싶었다네.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마녀가 날 집어들고는 그 더러운 얼굴로 내 시야를 꽉 채웠지.

마녀가 씩 웃더니 낼름 입술을 핥고는, 입을 쩍 벌렸어.


잠자리 군이 자네를 죽음으로 몬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알고보니 잠자리 군이 상당한 전략가였지 뭔가.


마녀의 입이 가까이 다가오자 난 그만 참지 못하고 날개를 파닥거렸지.

탈출하고 싶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아아, 하지만 마녀는 너무나 강하고 나는 너무나 작았다네.

그러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마녀의 턱이 힘없이 늘어지더군. 그 썩은 동태 눈깔이 빙그르르 돌더니 마녀가 쓰러져 버렸다네.

마녀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발버둥쳐 나왔더니, 그 잠자리의 병이 굴러가다 의자 다리 옆에서 멈추는 게 보였어.

'마녀를 때려눕혔구나!' 내가 마음으로 외쳤다네. '그래' 하고 그가 답했지. '내 병을 마녀 머리에 간신히 넘어뜨렸지.'

'고마워.' 내가 말했네. '자네 이름은?' 그가 답하길 '기억이 안나. 난 잠자리로 너무 오래 있었지만 넌 아직 늦지 않았어.'


잠자리 군의 병은 왜 땅에 떨어져도 박살나지 않은 거지?


나와 달리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마녀의 머리를 거쳐왔으니까.

게다가, 그의 병은 내가 본 것중에 제일 탄탄한 유리로 되어 있다네. 가끔은 거기에 무슨 마법부여가 된 게 아닌가 싶어.


그는 나를 가까이의 연금술 실험대로 안내하고는, 이것저것 가리키며 조금씩 뜯어먹으라고 하더군. 잠자리의 머리에 해독제의 기억이 있었던 거야.

그의 지시대로 따라하자 금새 내 평생 가장 끔찍한 바늘같은 고통이 느껴졌어. 난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 그리고 눈을 뜨자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네.

바로 잠자리에게 뛰어가서 병 뚜껑을 열어줬지만 그는 날아가길 거부하더군. 머릿속에 목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왠지... 전보다 약하고 멀리 떨어진 느낌이었어.

'난 너무 늦었어' 그가 말했네. '그 해독제는 나한테는 소용없어. 난 이제 사람보다 잠자리에 더 가깝거든. 부탁이니 뚜껑을 닫아줘, 열려있으면 불편하니까.'


거기에 왜 해독제가 있었던 거지?


나중에 잠자리 군이 말하기를, "어머니"가 가끔 아들들이 일을 제대로 안한다며 그 벌로 곤충으로 변신시키곤 했다네. 정말 오싹한 할망구라니까. 어쨌든.

그의 요청대로 해준 뒤 병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내 옷을 챙기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아까 식사를 했던 긴 탁자로 향했지.

'저 수프야.' 앞으로는 잠자리 군이라고 부르게 될 그 곤충이 말했네. 난 돌아서서 그를 향해 씨익 웃었어. 우리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난 수프 냄비를 들고 "어머니"에게 가서, 그 입을 벌리고는 몇 숟가락 안으로 떠넣었다네.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다른 자들을 풀어주고 여길 뜨자.' 잠자리 군이 말했네. '왜 내 머릿속엔 네 목소리만 들리는 거지?' 내가 물었어.

그가 말하길 다른 곤충들은 그보다도 더 오래 여기 있었고, 오래 전에 벌써 의사소통하는 법을 잊은 것 같다고 하더군.

나는 나비 하나에게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여봤어. 머릿속에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지.


잠시 곤충이 되었던 경험 덕에 곤충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가?


곤충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대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가끔 운이 좋을 때도 있다네.

가장 달변가는 뭐니뭐니 해도 잠자리 군이야. 어쨌든.

모든 병 뚜껑을 열어두고는 떠나려고 돌아서는데, "어머니"가 있던 자리에서 더러운 옷무더기 안에 회색 날개를 가진 뚱뚱한 나방 하나가 느릿느릿 꿈틀대는 게 보이더군.

난 그걸 집어들고 병 안에 가둔 뒤에, 시약재료 선반 뒤쪽에 잘 감춰놓았어. 그 마녀가 내 머릿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붓는 소리가 들렸지.

그러거나 말거나 잠자리 군을 향해 말했다네. "나랑 같이 갈래?" '그래 부탁해.' 그가 답했네. '같이 가자.'

난 그의 병을 품에 안고, 잠긴 문을 딴 뒤 열었어. 눈앞에 바로 그 형제들 얼굴이 보이더군.


그 표정을 보니 뭔가 충격적인 걸 본 모양이군.


그랬어. 놈들 입은 쩍 벌어지고, 눈은 치켜뜨고, 그중 막내는 훌쩍거리고 있었지.

난 검을 뽑아들고 놈들을 향해 돌진했어. 놈들은 날 보고 놀라는 바람에, 내가 자기들이 아니라 출구를 향해 달린다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

점점 작아지는 놈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출구로 내달렸어. 그리고 곧 도시로 통하는 비밀문에 당도했지.

녹슨 사슬을 잡아당겨서 입구를 열었는데, 밖에 나가려던 순간 맏이가 내 등으로 뛰어올라서 상처를 마구 잡아 뜯었다네.

놈을 떨쳐버리고는, 잠자리 군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윈드헬름으로 비틀거리며 빠져나왔지.

착지에 실패하고 땅에 쓰러졌는데, 머릿속에 잠자리 군의 외침이 들렸어. '굴러서 피해!' 내 머리 바로 옆으로 철퇴가 쿵 하고 박히며 바닥의 판석이 으스러지더군.

형제들이 밖으로 날 쫓아온 거야. 각자 손에 무기를 쥐고 덤벼드는 꼴이 날 죽이려는 게 명백했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그 머저리들! 감히 누구에게 덤벼!


내가 그동안 겪은 일도 많았고, 몸은 아직도 변신의 후유증에서 회복하는 중이었거든. 난 느리고 약한 상태였다네.


계속 해봐.


다리를 추스르고 검을 뽑아 놈들에게 휘둘렀다네. "물러서!" 내가 소리쳤어. "그냥 돌아간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고 우리가 그냥 보내줄 줄 알았나?" 형제 중 둘째가 말했어. "어머니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 흉칙한 외모를 예쁘게 다듬어서 안전한 데 모셔드렸지." 내가 답했어. 주민들이 주위에서 무슨 일인가 하고 하나둘씩 몰려들더군.

난 구경꾼들을 향해 말했어. "이놈들이 날 강제로 잡아 가뒀으니 경비병을 불러오시오!"

그 냉담한 얼굴들 중에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러다 누군가가 내게 빈 병을 던지더군.

형제 중 맏이가 외치기를, "이 더러운 카짓놈이 우리 집에 몰래 침입했소! 보나마나 스쿠마나 빨 돈을 훔치러 온 거겠지!"

군중들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내 발밑에 다른 병이 날아왔어. 사람들 너머로 경비병 둘이 왔다가 뒤돌아서 가는 게 보이더군.

'도망쳐!' 머릿속에서 잠자리 군이 말했다네. 그 말을 두 번 들을 필요도 없었지.


빌어먹을 윈드헬름!


그래. 윈드헬름은 탄압받고 혹사당하는 약자들이 무관심과 편협함에 이리저리 치이는, 추한 얼음 감옥같은 곳이야.


왜 맞서서 싸우지 않고?


난 너무 지치고 약해진 상태였거든. 게다가 주민들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들 또한 편견의 희생양일 뿐이니까. 어리석긴 하지만, 악한 건 아니라네.


계속 해봐.


막내가 날 검으로 힘껏 내리쳤어. 난 뒤로 훌쩍 피해서, 양배추 수레를 뒤집어 엎고는 그대로 달아났지.

묘지를 지나 시장으로 질주하면서 뒤를 힐끔 돌아보았어. 구경꾼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형제들은 여전히 날 쫓아오고 있었지.

난 정문으로 돌진해서 도시를 빠져나와 다리로 나갔어.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내 다리가 여전히 달리는 동안 잠자리 군이 머릿속에 계획을 한 가지 제시하더군.


형제들이 숨을 몰아쉬며 격분한 채 정문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난 첫번째 아치 앞에 있는 난간 왼편으로 걸어나왔다네.

그리고 검을 뽑아들고는 잠자리 군의 병을 집어들고 외쳤어. "이게 누군지 아나?"

"알 게 뭐냐? 벌레놈들이야 다 똑같지." 둘째가 답했어. "거기서 꼼짝 마, 이 겁쟁아! 넌 죽--었어!"

난 형제들이 전부 다가와서 난간 옆에 설 때까지 기다렸어.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 내가 물었지.

"그래." 막내가 훌쩍거리고, 맏이가 말했어.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불어라. 그럼 빨리 끝내주마."

"바로 여기 있지." 난 이렇게 대답하고는, 잠자리 군을 다리 아래로 던져버렸다네.


잠자리 군이 정말 용감한걸!


맞아. 잠자리 군이 정말 자랑스럽다네. 아마 남은 평생분의 용기를 그때 다 쥐어짜냈던 것 같긴 하지만.

형제들은 "우와아앙!" 하고 소리치더니, 병을 잡으려는 헛된 시도로 다리의 난간을 뛰어넘어 몸을 날렸다네.

그 계획을 실행한 곳이 30피트만 달랐어도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놈들이 추락한 얼음물은 아주아주 얕은 곳이었거든.

정말 두눈 뜨고 보기 어렵더군. 잠깐 동안은 잠자리 군이 걱정됐지만, 피웅덩이 속에서 병이 둥둥 떠있는 걸 보니 안심했어.


그리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 잠자리 군을 구해냈다네. 고맙다고 말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풀려나고 싶지 않냐고 물었어.

'아니.' 그가 답했지. '난 내 병 속이 좋아. 괜찮다면 같이 동행해도 될까?'

'내 예전의 삶은 벌써 잊어버렸어. 게다가 지금 하는 말조차 벌써 앞머리는 깜박깜박해.'

난 원한다면 언제까지든 내 옆에 있어도 좋다고 말했어. 그리고 그를 뭐라고 불러야 될지 물었지.

'어머니가 내 이름 약자를 뚜껑 위에 새겨놓았는데.' 잠자리 군이 말했어. '그게 뭐의 약자인지는 이제 기억 안나.'

"Mr. D라고 쓰인 것 같은데." 내가 답했지. "그럼 앞으로 잠자리 군이라고 불러도 될까?"

잠자리 군은 괜찮다고 답하고는, 이제 곧 내가 그의 말을 듣는 능력을 잃게 될 게 뻔하다고 말했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되진 않았다네.


마녀가 날 변신시켰던 이후로 난 가끔씩 잠자리 군의 생각을 읽곤 해. 때로는 말이나 벼룩, 개의 생각까지도 이해한다네.

아주 이질적인 데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언어가 담긴 형태는 아니지만, 대개 그 전반적인 요지는 파악해낼 수 있어.

잠자리 군의 언어 능력도 그의 우려와 달리 아직까지는 사라지지 않고 있어. 우리가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치매 방지에 효과적인 것 같아.

어쨌든, 이게 잠자리 군과 내가 만나게 된 사연이라네. 정말 긴 이야기였지. 듣는 동안 자네가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주 재미있게 들었어, 이니고. 고맙네.


재미있었다니 다행이군. 말로 옮기니 직접 겪었던 것보다는 힘들지 않았다네,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