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림 번역보관소


이니고.


왜 뭐 하려고?


그 상처들은 정확히 어쩌다 생긴 거지?


이건 상당한 이야기인데. 자네 앉은 자리는 편한가?


그래.


그건 듀팡 일 도중에 내가 자네를... 배신하고 나서 한 일주일쯤 지난 뒤였지.


자네가 날 쏜 후에?


그래. 그나저나 다시 한 번 미안하네.


그 시점에서 스쿠마는 끊은 상태였나?


딱히 그렇진 않았어. 그때도 여전히 중독자였지.

듀팡과의 거래가 씁쓸하게 마무리된 다음, 길에서 간신히 스쿠마 약간을 얻을 수 있었다네. 

그걸 빨고는 밤새도록 그자리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다음날 내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어.

펠릭스와 자네에게 그런 짓까지 하고 나니 내가 이 세상에 살아봐야 아무에게도 좋을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자네가 여전히 살아있어서 기쁘군.


그렇게 말해주다니 자넨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도 기쁘다네.


자네는 여전히 숨쉬고 있잖아. 뭐가 잘못된 건가?


그게 알고보니 난 우정에도 젬병이었지만 심지어 자살에는 더 젬병이었지 뭔가.

다음날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본 다음 올가미를 만들었다네. 야영지를 절벽 끝 부근에다 만들어 놨었거든.

거기서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밧줄을 매고 단단히 조였지.

그리고 남은 스쿠마를 비운 다음, 올가미를 목에 걸고 그대로 뛰어내렸다네.


나라도 그런 용기를 내지는 못했을 것 같군.


친구, 그건 용기가 아니라 단지 비겁함이었을 뿐이야.

그래도 당시에는 그게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었어. 내 생각이 짧았지.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지?


금방 알게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좋은 이야기는 뜸을 들여야 하는 법이니까.


계속 해봐.


내가 기억하는 건 추락의 순간과,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 짧은 고통의 순간, 그리고는 탁 하는 소리가 났던 것.

난 그게 내 목이 부러지는 소리인 줄 알았어.

그런데 다시 몸이 추락하고 있었지. 가파른 절벽이 눈앞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더군.

그때 든 생각은 "뭐 밧줄이 안되더라도, 땅에 도착하면 모든 게 끝나있겠구나."

너른 바위가 눈앞으로 훅 다가왔지. 난 충격이 오기 직전 두 눈을 감았어.

 그리고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나더니 정신이 들자 물 속이었다네.


뭐라고?!


갑자기 물 속이었다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돼? 좀 집중해서 들어보게.

난 얇은 바위층을 깨고 동굴로 떨어졌던 거야.


자네 머리가 돌보다 단단해서 다행이야.


칭찬인지 욕인지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내 이 잘 다듬어진 탄탄한 몸은 얇은 바위층에서 동굴까지 작은 구멍을 뚫어놓았지.

그때 다시 든 생각은 "뭐 땅이 안되더라도, 물에 빠졌으니 이 한심한 인생이 곧 마감되겠구나."

그런데 신들께선 다른 계획을 준비해 두셨던 모양이야.

물살이 날 표면으로 끌어올려 주었거든. 콜록거리고 식식대며 가쁜 숨을 내쉬는 와중에 그놈들의 소리가 들렸어.


무슨 소리를 들었나?


꼬꼬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 그곳은 동굴을 통과해 흐르는 강 속이었어.

어두웠지만 강둑에 철창이 달린 우리가 잔뜩 있는 게 보이더군.

닭들이 그 우리 밖에서 거들먹거리고 있었다네. 마법의 냄새가 분명했지.

난 남은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물 밖으로 빠져나왔어.


이거 자네가 꾸며낸 얘기 아냐?


맹세컨대 아니라네. 스쿠마 때문에 내 지각력에 좀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본 건 확실해.

그 우리 안에는 재갈을 물리고 손발이 묶인 사람들이 들어 있었어. 난 닭들을 무시한 채 달려가서 우리 문을 열어보려 했지.

한데 자물쇠가 단단히 잠겨있었어. 그리고 갑자기 발에 통증이 느껴져서 보니 닭이 날 쪼고 있지 뭔가!

놈을 뻥 차버렸는데 다시 지원군을 끌고 돌아오더군.


설마 닭 부대에게 공격받은 건 아니겠지!


글쎄 그랬다니까! 토끼 몇마리도 보였는데 놈들은 관여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어.


스쿠마 때문에 자네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군.


들어보게, 친구. 이게 헛소리같다는 건 알지만 절대 스쿠마 때문인 건 아니야. 내 말을 믿어줘.


계속 해봐.


나는 온통 펄럭대고 쪼아대는 악몽 한복판에 서 있었다네.

물로 다시 돌아가보려고 했지만 몇발짝 떼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지.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는 말이야?


아니. 둔탁한 물체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어. 그걸 증명할 혹도 있다네.

깨어보니 의자에 묶인 채였어. 역한 냄새가 나는 남자 하나가 날 관찰하고 있었지.

근처에 강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강 부근의 묘지같은 곳에 끌려온 것 같았어.

악취남 뒤에서 닭과 토끼 무리가 날 지켜보고 있었지.

악취남은 날 쓸모있게 만들 거라고 말했는데, 그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


나라면 놈의 머리를 뜯어내 버렸을 텐데.


자네 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야? 난 의자에 묶여있었다니까.

풀려나기 전까지는 머리를 뜯어내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네.


자네는 뭘 했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내게 무기는 없었지만 시간은 좀 있었지. 악취남은 수다떨길 좋아하는 친구였어.

난 발톱을 꺼내서 의자에 묶인 밧줄에 작업을 시도했어. 악취남 쪽은 할말이 좀 있는 눈치길래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지.

악취남은 자기가 강력한 마도사이고, 사람을 동물로 형태전환시키는 법을 익혔다고 하더군.

일단 전환되고 나면, 오직 그를 돕는 일에만 전념하게 된다는 거야.

스카이림 전역에 닭과 토끼 부대로 이루어진 첩보망이 깔려있다고 하더군.


그거 상당히 그럴싸한걸.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난 악취남에게 왜 닭과 토끼만 쓰냐고 물었다네. 그가 답하길 닭은 눈에 전혀 띄지 않는다는 거야.

곰이나 매머드는 너무 튀어서 곤란하지. 첩자로서는 작은 동물이 최적이라네.

난 만약 닭이 된다면 악취남의 눈알을 쪼아서 뽑아버리겠다고 말했어.

그는 변화는 심신 모두에 해당된다고 말하더군. 단지 그의 분부만을 기다리는 맹목적인 부하가 될 거라면서.


놈이 이루려던 게 뭐였지?


악취남은 첩보망을 이용해 정보를 모아서 이 땅 전역에 증오를 불러일으켜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 말했다네.


자네는 어떻게 빠져나왔지?


몰래 염탐한 결과 벽에 문 하나가 썩어있는 걸 발견했거든. 몸에 묶인 밧줄이 느슨해지는 걸 느끼자마자 문으로 곧장 튀어갔다네.

문이 부딪쳐 열리는 동안 의자는 산산조각이 났고 난 묶인 몸에서 해방됐지.

그 마도사는 분노에 차 괴성을 지르며 내 쪽으로 주문 하나를 발사하더군.

난 그의 공격을 피해 긴 바위터널 속을 내달렸지. 뒤에서 그 악취 마도사의 웃음소리가 들렸어.

"그 길의 끝은 죽음뿐이다!" 놈이 소리치더군. "잘됐네!" 내가 답했지. "오늘 하루종일 그걸 찾아 헤맸거든!"


전환되느니 죽는 게 낫다?


그렇다네, 친구. 사악한 꼭두각시 닭이 되느니 차라리 죽은 이니고를 택할 거야.


자네는 드로거 묘지에 있었던 거지?


맞아. 뼈와 먼지 냄새가 내 코를 가득 채웠지. 그 마도사는 날 따라오지 않았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달리기 끝에 거대한 묘실에 당도했는데, 얇은 나선형 계단이 중앙으로 향해 나있더군.

바닥은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어지럽게 뒤덮여 있었어. 죽은 지 수백 년은 돼보였는데 알고보니 꽤나 팔팔한 놈들이었지 뭔가.

내가 중앙의 계단에 가려 하자 죽은 자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더군. 난 놈들을 뛰어넘어 계단을 올랐어.


자네가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면 왜 그들이 죽이게 놔두지 않았지?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이런 묘지에서 죽으면 놈들처럼 껍데기만 살아 걸어다니는 신세가 된다고 하셨지.

진정한 죽음과는 아주아주 거리가 먼 형태로 말이야.


자네가 사용했던 스쿠마에 여전히 영향받고 있던 건 아닌가?


내가 환영을 본 게 아니냐고 묻고 싶은 거라면 잘못 짚은 거야. 하지만 스쿠마 때문에 확실히 날렵함에 많은 지장을 받은 상태였지.

맞서싸우기엔 놈들 수가 워낙 많아서 난 계단을 오르는 데만 집중했다네.

절반쯤 오르자 천장에 구멍이 뚫린 것을 알아챘지. 공기가 다른 곳보다 더 신선했거든.

바로 그때 나답지 않게 발을 헛디뎌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어.

금새 죽은 자들이 날 향해 덮쳐와 찍어누르고는 할퀴기 시작했지.

메마르고 갈라진 손가락들이 내 얼굴을 찢고 바로 이 상처들을 남겼다네. 난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어.

그런데 갑자기 굉장한 일이 생겼지.


놈들이 전부 먼지로 사라졌나?


그랬다면 참 편리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어.


어떻게 됐던 거지?


문득 내가 살고 싶다는 걸 깨달았어. 내 인생은 아직도 뭔가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

어쩌면 우리 형이 기억하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거야.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자 내가 미처 몰랐던 힘이 솟구쳐 오르더군. 난 맞서 싸우며 "안돼!" 소리를 외치고 또 외쳤다네.

안돼! 내 목숨은 가져갈 수 없어! 안돼!!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안돼!!!

그러는 내내 있는 힘껏 발을 버둥거리며 싸웠다네. 놈들의 목을 부러뜨리고, 팔을 부수고, 눈알을 찍어 뽑아냈지.

어찌어찌하다 보니 다시 계단에 도달해 있었어.


와우!


그래 꽤 굉장했지. 만약 그날 아침 온갖 죽을 짓을 하느라 기운이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면

지금 이렇게 자네와 이야기하는 날은 오지 못했을지도 몰라.


자네 정말 운이 좋았군!


난 결의와 목표라고 부르고 싶지만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어쨌거나, 난 계단의 꼭대기에 올라 천장의 승강구를 열고 환한 태양빛 아래로 걸어나왔어.

아침의 야영지에서 겨우 몇백 보 떨어진 곳이었지.

난 밧줄을 맨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참동안 보고 또 보며 그자리에 계속 서있었다네.

난 빚이 많은 몸이라는 걸 알았어. 그리고 내 힘이 닿는 한 살면서 그 빚을 다 갚아나가겠다고 맹세했다네.

자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내 목숨을 누가 취한다면 그건 누구도 아닌 바로 자네여야 한다고 결정했어.

그 나머지는 자네도 다 알 거야. 그게 내 얼굴의 상처에 담긴 사연이라네. 좋은 이야기지 안그런가?


정말 환상적인 이야기야, 이니고.


응 그렇지. 이 상처는 내게 그 모든 인과들을 되새기고, 아직 내가 나 자신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힘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