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림 번역보관소

[책] 경계병 탈윈의 일기

2016. 7. 8. 14:57 - renn



경계병 탈윈의 일기



Better Vampires




내 목숨은 스텐다르를 섬기는 도중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자비와 나눔, 인과응보를 주관하며 무엇보다도 정의를 수호하는 신 스텐다르여. 드높은 사명에 몸을 바쳐 경계병으로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상의 영광은 없을진대, 나의 심장은 기쁨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내 사후 세계는 탈취당했고 생을 바쳐 매진했던 일들에 이제는 씁쓸함만을 맛본다.


 어쩌면 스텐다르의 가호를 누리기엔 나의 경계병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스스로를 무적이라 여겼던 오만함과 허영심이 그 대가를 치룬 것이리라. 비록 역경에 발목을 잡혔으나 나는 불사의 고뇌 속에서도 계속 스텐다르를 섬겨나갈 것이다.


 나는 뱀파이어가 되었다.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내게는 고통이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나는 죽지 않았다. 아니 살아있는 시체로 남았다. 그 대신 피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갈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스텐다르의 모든 교리와 가르침에 반하는 부정한 욕망이 나를 지배한다. 짐승처럼 행동하고 죽음의 진창에서 뒹굴며 무고한 자의 피를 탐하고자 하는 충동을, 지금까지는 간신히 억눌러 왔다.


 나는 악과 부정함을 단죄하는 스텐다르의 정의를 잃지 않았다. 오직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자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연장된 이 삶은 나의 의무와 소명을 다해가는 새로운 기회로 삼을 것이다. 비록 나의 과거 형제들에게 즉결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할지라도.


 다행스럽게도 생전에 경계병의 비밀 금고와 성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과거의 형제들을 배신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보다 큰 대의를 위해 그 부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죄가 아니리라.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스텐다르를 신실히 받들고, 내게 끝나지 않는 고통을 선사한 그 가증스러운 흉물들을 처치하고자 숱한 암살자들도 고용해 왔다.


 나는 뱀파이어다. 바라건대 머지않은 시일에 이 부정한 목숨이 스러지기를, 그러나 나 자신, 그리고 변해갈 나 자신과 같은 수많은 흉물들을 이 스카이림에서 전부 몰아내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 언젠가 내가 쓰러지는 날이 오더라도, 확보해 놓은 스텐다르의 자금으로 계속해서 사냥꾼들을 고용해 뱀파이어의 씨를 말릴 조치를 마련해 놓았다.



"스텐다르여 굽어살피소서, 주의 가호 아래 비로소 주의 백성의 고통에 눈이 뜨일 수 있나이다. 중생의 안녕과 지혜에 귀기울이고 저 자신을 공허함 속에서 구원케 하소서."


- 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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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장 혐오하던 존재가 되었는데도 과거의 의지를 잃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저자의 결의가 돋보입니다. 어쩌면 그것만이 자신을 지탱할 유일한 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기혐오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의 의지가 단호할수록 고통 또한 커지겠지요. 비슷한 처지에서 정반대의 길을 택한 모바스가 떠오릅니다. 둘다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들입니다.